2002년 겨울입니다. 그 때 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던 백수였지요. 생각보다 긴 휴식기간에 마음은 점점 초조해져가고, 피폐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겨울밤에 저는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있었습니다. 대선을 하루 앞둔 그 날, 이미 대권 후보였던 당신과 다시 한번 경선을 치루고, 굴복했던 정몽준씨가 당황스럽게도 대선을 하루 앞둔 바로 당신을 떠났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신은 항상 그랬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죽도록 고생해서 목표를 쟁취해도 이미 가진 사람들은 당신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판사가 되셨을 때도, 변호사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그 시절에도, 국회의원이 대고 청문회에서 준열한 일갈을 내뱉을 때도, 부산에서 낙선을 거듭할 때도, 당신은 계속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가진 사람들은 그런 당신을 애써 외면 했었습니다.
대선때도 그랬지요. 처음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셨을 때 사람들도, 저도 긴가민가 했습니다.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게 조금씩 바꼈습니다. 어느새 제주도를 거치고, 전라도를, 경상도를 거치면서 당신은 대선 후보로 당선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당신을 시험대에 올리려는 사람들 때문에 다시 그 시험대 위에 오르셨고 또 이겨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노력을, 그 결과를 또 부정당하셨던 거지요. 대선 하루전 바로 그 날에.
대선 하루 전날, 차가운 겨울 이른 새벽에 저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지금까지도 당신을 끝까지 물어뜯고 있는 조선일보가, 그 날 당신을 비방하는 흑색 선전물을 전국에 무차별적으로 살포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었거든요. 대구 촌구석에 있던 백수였던 저는, 할 수 있는 일이 그 것 밖에 없었습니다. 신문이 배달되던 그 시간에 밖으로 나가 혹시나 그런 선전물이 돌아다니지 않을까 감시하는 일. 그렇게 저는 그날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평민의 자식이었던 당신이, 상고 출신이셨던 당신이, 인권변호사였던 당신이, 몇번이나 고향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전직 의워이셨던 당신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당선이 되셨던 겁니다. 세상에!
솔직히 지난 2002년 전에는 당신을 잘 몰랐습니다. '청문회 스타' 조목조목 시원하게 말 잘하던 국회의원. 그게 제가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2002년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2002년이 아니었다면, 당신이 대선후보가 되실 일도, 그리고 대통령이 되실 일도 없었을 지 모릅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가시기도 전, 우리는 알았거든요. 광장에 모이는 게 어떤 건지, 모두 한마음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흥겨운 일인지, 그리고 한 마음으로 외치면 무언가는 변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 때 처음 알았었거든요. 그 전에는 고백하건데 모여봤자 뭐해? 나서면 뭐해? 참여하면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 역사가 그래왔었기 때문에, 앞에서 머리띠 둘러메는 사람이 너무 바보스러워 보였었거든요. 그래서 2002년이었기 가능한 기적이 바로 당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보들의 대통령, 서민들의 대통령이라는 꿈, 그게 바로 당신이셨습니다.
그리고 그후 5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첫 여성 법무장관이 계셨구요. 평검사들과 열린 자리에 나서셨고, FTA와 이라크 파병으로 많은 질타를 받기도 하셨지요. 그리고 탄핵이 있었습니다. 탄핵이라니!
당신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다시 인정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가진 자들의 탐욕이란 얼마나 무서운 건지요.
그 때. 종로 교보문고 앞에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가까이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아 그 사람이 그렇구나, 그 사람만한 사람이 없었구나. 그렇게 한탄을 하게 만드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사람. 당신은 그런 분이셨던것 같습니다.
벌써 새벽입니다.
이 밤이 지나면, 당신을 보내드려야 한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지난 토요일 아침 TV에서 한 줄로 지나가던 뉴스 속보를 접했던 그 순간부터,
가슴 한 가운데 바윗덩이 하나 내려앉은 것처럼 답답하고 먹먹합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TV에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당신의 환한 웃음을 볼 때마다, 바윗덩이는 더 커져만 갑니다.
그래서 내일 당신을 보내드리기 전에, 당신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답답한 체증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습니다.
봉화마을에 내려가 계시던 당신, 고향에 와서 참 좋다던 당신, 고향동네 사람들, 이름 없는 촌부들 이름 하나하나 불러주시던 당신,
동네 슈퍼에서 막걸리에 담배하나 태우시던 당신, 발가락 양말에 밀집모자 쓰고, 자전거로 동네 마실을 다니시던 당신.
그 모습에 많이 미소지었습니다.
웃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대통령을 마음 속에 담아둘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가세요. 이제 남은 이들이 헤쳐나가야지요.
오늘,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대통령을 떠나 보냅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